[COLUMN] 이학림의 칼럼 6th. 비빔밥과 개밥

KoreaFashionNews | 입력 : 2013/10/21 [20:28]
영화 ‘catch me if you can’의 초반부에, 극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 돈을 빌리러 은행에 가게 된다. 은행에 가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동행하는데, 멋진 수트를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은행 앞까지 가서 내리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왜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는데 이렇게 해야 되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되묻는다.
 
“너 왜 양키스가 늘 우승하는지 알아?”
“글쎄요, 아마도 미키 맨틀(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이 있어서?”

그러자 아버지의 대답.
“아니. 그건 다른 팀 선수들이 양키스의 너무 멋진 핀스트라잎에서 눈을 떼질 못하기 때문이야.”
 
물론 영화에서 아버지는 결국은행에서 돈을 빌리지는 못하게 되고,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되니 양키스에 대한 그의 철학은 결국 틀린 꼴이 돼버렸지만. 영화 내용과는 무관한 이 짧은 에피소드는 전체 영화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뉴욕에 있다 보면, 턱시도 나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한껏 멋을 낸 신사 숙녀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된다. 영화제라도 하는 건가하고 유심히 지켜보면 그들은 전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파티를 하는 날에는 파티에 어울리는 이브닝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을 하고, 야구를 하는 날에는 야구복을 갖춰 입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T.P.O가 아니겠는가?

*time, place, occasion의 머리 글자로, 옷을 입을 때의 기본원칙을 나타낸다.

비단 파티 복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뉴욕의 길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뉴욕의 젊은이들은 ‘패션 컨셉’이 철저하게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누가 봐도 보더스러운 복장(어두운 후디와 모자, 스키니진과 운동화)을 두르고 길거리를 누비고, 펑크족들은 예외없이 문신과 징으로 장식된, 다소 과하고 공격적인 펑크룩을 즐긴다. 히피들은 히피스럽게 꾸미고 다니며 월가의 직장인들은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클래식한 수트와 넥타이 등)을 두르고 이런 젊은이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자기 길을 걷는다.

한마디로, 그들은 그런 자기들의 특정한 생활양식에 따른 최적의 옷차림을 늘 즐기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꾸미고 안 꾸미고의 문제가 아닌, 몸에 밴 자연스러운 ‘생활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8월에 서울에서 있었던 록페스티벌에서 필자는 심각한 괴리를 느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것 같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복장 때문이었는데, 대표적으로 흰색 셔츠에 에메랄드색 반바지나 파스텔톤의 치노팬츠를 입은 단정한 머리 모양의 남자들, 마치 ‘포카리스웨트’의 광고모델일 것 같은 흰색 원피스에 밀짚모자까지 쓰고 오는 청순한 여자, 그조차도 아닌, 아무 컨셉을 찾아볼 수 없는 흰색 티셔츠와 트레이닝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까지, 내가 지금 한강 시민공원에 피크닉을 옷 것인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즐기러 들으면서 미칠 준비를 하고 있는 록페스티벌인지 구별할 수가 없는 그 아찔한(!) 풍경 속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컨셉의 부재’였다.

물론, 록 콘서트에 이런 복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또한 없다. 그리고 흰 셔츠를 즐기는 사람이 록 음악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비빔밥’과 ‘개밥’이 똑같이 여러 가지를 넣고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알지만, 전자가 서로 잘 어울리는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만든 음식인 점인 것과, 후자는 아무거나 버릴 것들을 뒤섞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악취 나는 쓰레기 같은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듯이, ‘록페스티벌’에 대한 아주 조금의 지식만 있다면, 이곳에서 ‘최대한으로’ 즐기기 위한 가장 좋은 옷차림과 *애티튜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저히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가짐·태도·자세·몸가짐>이라는 의미의 일반적인 명사

비단 패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서울에서 살고 있다 보면, 도대체 이 도시의 컨셉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어떤 ‘아이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제멋대로인 버스 색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유흥가의 조잡한 네온사인들, 동네마다 다른 쓰레기통의 모양들, 외국 흉내를 내다 만 것 같은 거리 풍경까지, 일정한 틀과 규칙 따위는 깡그리 무시된 채, 그저 개밥처럼 그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서 악취를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이 서울의 안타까운 현주소이다.

아이돌밴드들이 새 앨범을 들고 음악 프로에 나오면 늘 “이번 앨범의 컨셉은 ~입니다”라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곤 한다. 한마디로 매번 컨셉을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소녀 느낌의 전 앨범과는 달리 “이제는 여성이 되어버린…”이라며 갑자기 섹시미를 내세우다가 또 다음번에는 아마조네스가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컨셉의 부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컨셉이란,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개발하고 점점 깊어지는 것이다. 마치 메탈리카의 음악이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약간씩의 형식적인 변화를 줌에도 불구하고, 누가 들어도 메탈리카의 음악임을 깨달을 수 있는 큰 뿌리는 변하지 않듯이, 외형적인 변화와는 관계없는 내면의 뿌리를 우리는 ‘명확한 컨셉’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이 도시에는 수많은 멋쟁이들이 있다. 세계의 유행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도시 중 하나가 아마도 서울일 만큼 서울의 거리는 늘 새로운 패션, 새로운 컨셉을 뽑내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컨셉’은 없다. 그저 오늘은 이 흉내, 내일은 저 흉내를 내며 내일 모레는 누구를 흉내 낼까를 고민하는 ‘가짜’들만 가득할 뿐, 무언가에 심취되어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만들고 자기만의 멋에 빠져 누가 뭐라고 하건 그것을 즐기고 향유하는 ‘진짜’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발 내년 록페스티벌에서는 피크닉을 나온 시민들이 아닌, 록 음악에 심취한 미친 젊은이들의 바디슬램을 보기를 바라며, Peace!
 

▲ 20CFBB CHIEF DESIGNER 이학림     ©Korea Fashion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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