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전재훈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KoreaFashionNews | 입력 : 2018/09/14 [14:29]
강의를 할 때에 필자가 단골로 던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떠오른 듯이 보이나 이내 각자의 의견을 펼치곤 하는데, 이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패션’과 ‘예술’의 개념에 대한 정의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예술’하면 흔히 떠오르는 장르들이 있다. 회화, 조각, 건축, 시, 무용, 음악 등등…… 이러한 용어는 우리에게 뭔가 고상함이나 품격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러한 예술의 개념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변화해오고 있다.
그리스 시대의 ‘예술(art)’은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이나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다. 즉, 이 시기의 예술의 개념은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수공업적인 기술까지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고대의 예술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회화, 조각, 건축, 시, 음악, 연극, 무용 등과 같은 순수예술을 공예, 복식, 과학 등의 수공업적인 예술과 구분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기 즈음이다. 이러한 구분은 18세기에 이르러 유미주의 사조와 맞물리면서 극대화 되었고, 예술은 ‘미적’인 것이라는 의미 축소와 함께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대중들과는 격리된 자신들만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게 된다.
▲ Strawberry Thief, 1883, William Morris (1834-1896) V&A Museum no. T.586-1919 © KoreaFashio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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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세기 후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장식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술공예운동’을 통해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대중들을 위한 예술을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하였다.
‘패션’과 관련된 ‘옷을 만드는 일’을 이와 같은 예술 개념의 변화 속에서 살펴본다면,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옷을 만드는 수공업적인 기술은 엄연히 예술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순수예술을 중시하는 시기에는 예술에서 배제되었다가,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이후에는 다시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패션’은 무엇인가? 관련된 많은 용어들 - ‘옷’, ‘의복’, ‘피복’, ‘복식’, ‘의상’, ‘의류’, ‘장식’ 등등 – 중에서 ‘패션’만이 갖는 가장 중요한 속성은 ‘변화’이다. ‘패션’을 우리말로 가장 가깝게 번역한 것은 ‘유행’이다. 따라서 변화를 동반한 유행은 모두 ‘패션’의 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사람들은 ‘패션’하면 흔히 ‘의식주’ 중 ‘의’와 가장 밀접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와 같이 ‘예술’과 ‘패션’의 개념은 관점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패션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에 대한 대답은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예술’의 개념과 ‘패션’의 개념에 따라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위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과연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나는 마치 회색분자처럼 다음과 같이 대답하곤 한다. “그것은 패션의 개념을 현대패션에 국한시키는가 아니면 예로부터 입어왔던 복식의 개념으로까지 확장시키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예로부터 예술에 대해 논했던 많은 학자들이 언급한 예술작품의 공통적인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 행위에 의한 상징적 산물이다. 둘째, 모든 예술작품은 일정한 형식과 원리 하에 창조된다. 셋째, 예술은 표현이다. 넷째, 예술은 인간 행위의 창조물이다.
이러한 4가지 특성들을 복식에 적용시켜보면, 첫째, 복식은 인간 행위의 상징적 산물로서 형태를 빌려 내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둘째, 복식을 만드는 과정에는 일정한 형식과 원리가 적용된다. 셋째, 복식은 인간의 미적 표현을 위해 사용되어 왔다. 넷째, 패션은 늘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조성에 기인한다.
이처럼 복식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다 크게 해석해보면 예술의 주요한 4가지 특성들을 다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패션은 예술이다.’라고 한마디로 단정 짓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20세기 이후의 현대 패션은 이전의 복식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패션산업은 20세기 후반 대량생산 시스템의 구축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많은 기성복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성장과 발전을 하고 있는데, 이 브랜드들은 자사의 이윤 추구를 위해 소비자들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트렌디한 제품들을 매시즌, 매달, 아니 매주 선보인다.
이와 같은 패션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별하여 착용하려 노력하지만, 대량생산의 기성복 생산 시스템 내에서는 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의 기성복들, 특히 전 세계에 판로를 가지고 있는 SPA 브랜드의 패션제품들이 과연 ‘예술’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참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다.
‘디자이너의 순수한 창작 의지’ vs. ‘현대 패션산업 시스템 내에서의 이윤 추구’ 어느 것이 패션에 더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현대패션은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한 답이 결정될 것 같다. 따라서 ‘패션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라는 문제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기에,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자 한다.
▲ 전재훈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 / 생활과학연구소 겸무연구원 © KoreaFashio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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