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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의복 및 섬유생활문화 ④
박원호의 섬유역사산책-8
 
KoreaFashionNews 기사입력  2016/11/28 [11:08]
 ▲ 발해문화는 당문화를 비롯한 여러 문화를 받아들어 융화시킨 독특한 복합문화다. 특히 불교와 고대 동방기독교간의 융합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들의 발견됐는데 발해의 솔빈부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십자가가 발견되고, 동경용원부(현 훈춘)에서는 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상이 출토되었다. © TIN 뉴스     © KoreaFashionNews

 

 

◈ 삼국사기에 수록된 발해의 역사와 그 풍속

 

◎ 해동역사에 수록된 발해의 역사와 그 풍속

 

805년 발해 강왕 11년 당(唐)나라 정원 21년 정월에, 순종(順宗)이 즉위하였다. 같은 해 5월 갑진에, 검교사공 홀한주도독 발해국왕(檢校司空忽汗州都督渤海國王) 대숭린을 금자광록대부 검교사도(金紫光祿大夫檢校司徒)로 올렸다.

 

806년 발해 강왕 13년 당(唐)나라 헌종(憲宗) 원화 원년 9월 병술에, 대숭린에게 검교태위(檢校太尉)를 더 제수하였다. (구당서)

 

809년 발해 정왕(定王) 대원유(大元瑜) 원년 당(唐)나라 원화 4년에, 대숭린이 죽었다. 시호(諡號)를 강왕(康王)이라 하였다. 아들 대원유(大元瑜)가 즉위하여 연호를 영덕(永德)으로 고쳤다. (신당서) 대원유를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銀靑光祿大夫檢校祕書監忽汗州都督)으로 삼고, 전대로 발해국왕(渤海國王)에 봉하였다. (구당서)

 

813년 발해 정왕 대원유 5년 희왕(僖王) 대언의(大言義) 원년 당(唐)나라 원화 8년 정월에, 대원유(大元瑜)가 죽었다. 시호를 정왕(定王)이라 하였다. 동생 대언의가 즉위하여 연호를 주작(朱雀)으로 고쳤다. 경오에 권지발해국무(權知渤海國務) 대언의에게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銀靑光祿大夫檢校祕書監忽汗州都督渤海國王)을 제수하고, 내시 이중민(李重旻)을 사신으로 보냈다.

 

818년 발해 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 원년 당(唐)나라 원화 13년에, 대언의가 죽으니, 시호를 희왕(僖王)이라 하였다. 동생인 대명충(大明忠)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시(太始)로 고쳤다.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간왕(簡王)이라 하였다. 대명충의 종부(從父)인 대인수가 즉위하여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쳤다. 대인수의 4대조는 대야발(大野勃)로 바로 고왕(高王) 대조영의 동생이다. (신당서) 같은 해 정월 을사에, 발해에서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고, 또 부고하였다. 같은 해 5월 신축에, 지국무(知國務) 대인수를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으로 삼았다. (구당서)

 

▲ 연해주의 옛 발해성인 노브고르데에프성 취락지에서 출토된 중앙아시아 소그드 은화. 앞면에 왕관과 함께 ‘부하라의 군주 짜르’란 소그드 문자가 새겨져있다. © TIN 뉴스

820년 발해 선왕 3년 당(唐)나라 원화 15년 윤1월에, 발해에서 사신을 보내어 와서 조공하였다. 대인수가 자못 바다 북쪽의 여러 부(部)를 토벌하여 국토를 넓혀 공이 있었으므로, 조서를 내려 금자광록대부 검교사공(金紫光祿大夫檢校司空)으로 올려 제수하였다. 원화(元和) 연간에는 모두 16번 조공을 바쳤고, 장경(長慶) 연간에는 4번, 보력(寶曆) 연간에는 2번 조공을 바쳤다.

 

830년 발해 선왕 13년 당(唐)나라 문종(文宗) 태화(太和) 4년에, 대인수가 죽었다. 시호를 선왕(宣王)이라 하였다. 아들 대신덕(大新德)이 일찍 죽어서 손자 대이진(大彝震)이 즉위하여 연호를 함화(咸和)로 고쳤다. (신당서)

 

831년 발해 왕 대이진(大彝震) 원년 당(唐)나라 태화 5년 정월 기축에, 권지국무(權知國務) 대이진을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으로 삼았다.

 

832년 발해 왕(王) 대이진 2년 당(唐)나라 태화 6년 12월 무진에, 내양(內養) 왕종우(王宗禹)가 발해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발해에서 좌우 신책군(神策軍), 좌우 3군(三軍), 120사(司)를 두었다고 하면서 그림으로 그려 올렸다.

 

832년 발해 왕(王) 대이진 3년 당(唐)나라 태화 7년 정월에, 발해에서 동중서우평장사(同中書右平章事) 고보영(高寶英)을 보내어 책명(册命)을 내려 준 것을 사례하였다. 이어 학생 3명을 고보영에게 딸려 보내어 상도(上都)에 나아가 학문을 배우게 하고, 앞서 보낸 학생 3명은 학문이 어느 정도 되었으므로 귀국시켜 주기를 청하니, 황제가 허락하였다. (구당서) 당(唐)나라 문종(文宗)의 대가 끝날 때까지 와서 조회한 것이 모두 12번이며, 회창(會昌 ; 당나라 무종의 연호) 연간에는 모두 4번이었다. (신당서)

 

858년 발해 왕(王) 대건황(大虔晃) 2년 당(唐)나라 선종(宣宗) 대중(大中) 12년 2월에, 대이진이 졸하였다. 계미에 그의 동생 대건황이 서서 발해 국왕이 되었다. (자치통감) 대건황이 죽고 대현석(大玄錫)이 즉위하였다. 발해는 함통(咸通 ; 당나라 의종의 연호. 860-873년) 연간에 드디어 해동성국(海東盛國)이 되었다. 나라 안에는 5경(京), 15부(府), 62주(州)가 있다. 이곳에서는 임금을 일러, 가독부(可毒夫), 성주(聖主), 기하(基下)라고 하고, 임금의 명령을 교(敎)라고 하며, 임금의 아버지를 노왕(老王)이라 하고, 어머니를 태비(太妃)라고 하고, 아내를 귀비(貴妃)라고 하고, 맏아들을 부왕(副王)이라고 하고, 나머지 아들들을 왕자(王子)라고 한다. 발해의 관명(官名)은 대개 중국 제도를 모방하였다. 유주절도부(幽州節度府)와는 서로 빙문(聘問)하였으나, 영주(營州)와 평주(平州)에서 경사에 이르기까지는 8천리나 되는 먼 거리였으므로, 그 뒤에도 조공을 바쳤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사가(史家)들이 기록하지 않은 탓에, 반란하였는지 귀부하였는지에 대해 상고할 수가 없다. (신당서) 907년 양(梁)나라 태조 개평(開平) 원년 5월에, 발해의 임금 대인선(大諲譔)이 왕자를 보내어 조회하였다. 발해는 본디 말갈(靺鞨)이라 부르는데, 고구려의 별종(別種 ; 갈래)이다. 발해의 귀족은 성(姓)씨가 대(大)씨로, 5대 동안이나 항상 왕래하면서 조공을 바쳤는데, 그 나라의 토산물(土産物)은 고구려와 같다. 대인선의 세차(世次), 임금이 된 해, 죽은 해 등에 대해서는 역사의 기록을 모두 잃어버렸다. (오대사) 918년 요(遼)나라 태조 신책(神册) 3년 2월에, 발해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919년 요(遼)나라 신채 4년 2월 병인에, 요양(遼陽)의 옛 성을 수복한 뒤 이를 고쳐 동평군(東平郡)으로 삼고 방어사(防禦使)를 둔 다음 발해의 호구(戶口)들을 잡아다가 채워 넣었다.  924년 요(遼)나라 천찬(天贊) 3년 5월에, 계주(薊州)의 백성들을 옮겨 요주(遼州)의 지역에다가 채웠다. 발해가 요주의 자사 장수실(張秀實)을 살해하고 백성들을 빼앗아 갔다. (요사)

 

▲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십자가 형태의 화강암제 석물(石物)로, 통일신라시대 경교(景敎)의 한국 전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 TIN 뉴스

요사고증(遼史考證)에는, 자치통감을 살펴보면 이해에 계단(契丹 ; 거란)의 군사가 발해를 정벌한 내용이 있어서 날짜를 상고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요사((遼史)》에는 5월조에 발해가 자사를 살해하고 백성들을 빼앗아 갔다고만 하였다. 여기에서 역사를 쓰는 자들이 빠뜨린 내용이 많음을 알겠다 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요(遼)나라 천찬 3년은 바로 후당(後唐) 동광(同光) 2년이다. 924년 후당 장종(莊宗) 동광 2년 7월, 이 당시에 동북방의 여러 종족들이 모두 계단(契丹 ; 거란)에 투속하고 오로지 발해만이 계단에 복속되지 않았었다. 계단의 추장이 중국을 치려고 꾀하였는데, 발해가 중국과 내통하면서 계단의 뒤를 칠까 염려하였다. 이에 먼저 군사를 일으켜 발해의 요동 지방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장수 위뢰(委餒)와 노문진(盧文進)을 보내어 영주(營州), 평주(平州) 등에 웅거하여 연(燕)나라 지방을 어지럽히도록 하였다. 같은 해 8월에, 계단이 발해를 공격하였으나,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갔다. (자치통감)

 

책부원구에는, 924년 동광 2년 7월에 유주(幽州)에서 계단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동쪽으로 발해를 공격한 사실을 정탐하였다고 아뢰었다 라고 하였다. 925년 후당 동광 3년 5월 을묘에, 발해국의 입조사(入朝使)인 정당성수화부소경 사자금어대(政堂省守和部少卿賜紫金魚袋) 배구(裴璆)에게 찬선대부(贊善大夫)를 더해 주었다.(책부원구) 925년 요(遼)나라 천찬 4년 12월 을해에, 조서를 내리기를, 이른바 두 가지 일 가운데서 한 가지 일은 이미 완수하였으나, 발해와의 대대로 내려온 원수는 갚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편안히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를 일으켜 친히 발해의 대인선(大諲譔)을 정벌하였는데, 황후(皇后)와 황태자(皇太子), 대원수(大元帥) 요골(堯骨) 등이 모두 따라갔다. 윤달 임진에, 목엽산(木葉山)에 제사를 지내고, 임인에 오산(烏山)에서 청우(靑牛)와 백마(白馬)를 희생으로 써서 천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었으며, 정사에 상령(商嶺)에 주둔하였다가 그날 밤에 부여부(扶餘府)를 포위하였다.  926년 요(遼)나라 천현(天顯) 원년 정월 기미에, 백기(白氣)가 해를 꿰었다. 경신에 발해의 부여성(扶餘城)을 함락하고는 성을 지키고 있던 장수를 죽였다.

 

▲ 부여성 - 현재 위치는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집안성) 농안 지역 혹은 길림시 용담산성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와 부여 시대의 성이다. 고구려가 세웠던 천리장성의 북쪽 끝이 부여성이었으며, 남쪽 끝은 비사성이었다.     © TIN 뉴스

 

자치통감 주에, 이는 바로 당(唐)나라와 고구려 때의 부여성이다. 이 당시에 고려 임금 왕건(王建)이 나라를 세워 혼동강(混同江)까지 차지해서 지키고, 혼동강 서쪽은 차지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부여성은 발해에 속한 것이다. 혼동강은 바로 압록수(鴨綠水)이다 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혼동강과 압록수는 서로 다른 강이다. 책부원구에, 926년 후당 동광 4년 정월에, 북면초토사(北面招討使) 이소진(李紹眞)이, 북쪽에서 해(奚)나라의 수령(首領)이 와서 계단(契丹 ;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발해를 쳤다고 하였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동광 4년은 바로 계단 천현 원년이다. 병인에 척은(愓隱)과, <살펴보건대, 국어해(國語解)를 보면, 척은은, 족속(族屬)을 맡은 관원으로, 바로 종정(宗政)의 직책이다> 안단(安端), 전 북부재상(北府宰相) 소아고지(蕭阿古只) 등에게 명하여 병사 1만기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는데, 대인선의 노상(老相)이 거느린 군사를 만나서 격파하였다. 황태자, 대원수 요골, 남부재상 소(蘇), 북원(北院)의 이리근(夷离菫)과, <살펴보건대, 이리근은 군마(軍馬)를 관할하는 대관(大官)의 이름이다> 사녈적(斜涅赤), 남원(南院)의 이리근 질리(迭里)가 이날 밤에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하였다. 기사에 대인선이 항복을 청하였다. 경오에 홀한성의 남쪽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신미에 대인선이 소복(素服)을 입고, 새끼줄로 몸을 묶고 양을 끌면서 요속 3백여명을 거느리고 나와 항복하니, 태조가 후하게 대우하면서 풀어 주었다. 갑술에 조서를 내려 발해의 군현에 유시하였다. 병자에 근시(近侍) 강말항(康末恒) 등 13명을 성안으로 보내어 무기를 수색하게 하였는데, 나졸(邏卒)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정축에 대인선이 다시 반란하니, 성(城)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어가(御駕)가 성안으로 들어가자, 대인선이 말 앞에서 죄(罪)주기를 청하였다. 조서를 내려 대인선과 그 족속들을 군사들로 에워싸고서 나와 천지의 신에게 제사 지낸 다음 다시 군중(軍中)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같은 해 2월 경인에, 안변(安邊), 막힐(鄚頡), 남해(南海), 정리(定理) 등의 부와 제도의 절도사(節度使)와 자사(刺史)가 와서 조회하니, 위로하여 보냈으며, 노획한 기물과 포백(布帛 ; 직물) 등의 물품을 장사(將士)들에게 하사하였다. 임진에 청우(靑牛)와 백마(白馬)를 희생으로 써서 천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대사령을 반포하였으며, 연호를 천현(天顯)으로 고치고 발해를 평정하였다는 내용으로 사신을 보내어 당(唐)나라에 통보하였다. 갑오에 다시 홀한성(忽汗城)에 행행하여 창고에 있는 물품을 둘러본 다음 따라간 신하들에게 차등이 있게 하사하였다. 그리고 해부(奚部)의 장(長) 발로은(勃魯恩), 왕욱(王郁)이 회골(回鶻)로부터 신라(新羅), 토번(吐蕃), 당항(黨項), 실위(室韋), 사타(沙陀), 오고(烏古) 등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하여 넉넉하게 상을 주었다. 병오에 발해국을 고쳐 동단(東丹)으로 삼고, 홀한성을 천복(天福)으로 삼았으며, 황태자 배(倍)를 책봉하여 인황왕(人皇王)으로 삼아 이를 주관하여 다스리게 하고, 황제(皇弟) 질라(迭刺)를 좌대상(左大相)으로, 발해의 노상(老相)을 우대상으로, 발해의 사도(司徒) 대소현(大素賢)을 좌차상(左次相)으로, 야율우지(耶律羽之)를 우차상으로 삼았으며, 발해 국내의 사형수 이하의 죄인을 모두 사면하였다. 같은 해 3월 무오에, 이리근(夷离菫) 강묵기(康默記), 좌복야(左僕射) 한연휘(韓延徽)를 보내어 장령부(長嶺府)를 공격하게 하였다. 살펴보건대, 장령부는 홀한성이 함락되었을 적부터 성(城)을 굳게 지켜 함락되지 않았었다. 기사에 안변, 막힐, 정리 등 3부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안단(安端)을 보내어 토벌하였다. 정축에 이 3부를 평정하였다. 임오에 안단이 포로를 바치자, 안변부에서 반란을 일으킨 장수 2명을 처형하였다. 갑신에 천복성(天福城)에 행행하였다. 을유에 회군하였는데, 대인선의 모든 족속들을 데리고 갔다. 같은 해 5월 신유에 남해, 정리 2부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원수 요골이 토벌하여 6월 정유에 2부를 토평하였다. 같은 해 7월 병진에 철주(鐵州) 자사(刺史) 위균(衞均)이 반란을 일으켰다. 을축에 요골이 철주(鐵州)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신미에 대인선을 호송하여 황도(皇都)의 서쪽으로 보내 성을 쌓고 살게 하였으며, 대인선에게 오로고(烏魯古)란 이름을 하사하고, 아내에게는 아리지(阿里只)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살펴보건대, 국어해(國語解)를 보면, 오로고와 아리지는 태조(太祖)와 술률후(述律后)가 대인선에게 항복을 받을 때 탔던 말의 이름인데, 인하여 대인선 부부에게 이름으로 하사한 것이다. 신사에 태조가 부여부(扶餘府)에서 붕하니, 황후가 임시로 군국(軍國)에 관한 일을 주관하였다. 같은 해 8월 신묘에, 강묵기(康默記) 등이 장령부(長嶺府)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임인에 요골이 여러 주를 토평하고 행재소(行在所)로 달려왔다. 을사에 인황왕(人皇王) 배(倍)가 뒤이어 계속하여 행재소로 왔다. (요사)

 

책부원구에는, 926년 당(唐)나라 명종(唐明宗) 천성(天成) 원년 11월에, 청주(靑州)의 곽언위(霍彦威)가 아뢰기를, 등주(登州)의 장계를 보니, 거란에서 먼저 여러 부(部)의 군사를 출동시켜 발해국을 공격하였는데, 아보기가 죽은 뒤에 비록 군사를 퇴각시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병마를 발해의 부여성에다가 남겨 두었다. 지금 발해왕의 동생이 군사를 거느리고 부여성에 남아 있는 계단(거란) 군사를 포위하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천성 원년은 바로 요(遼)나라 천현 원년이다. 주(周 ; 후주)나라 세종世宗) 현덕(顯德) 초에 발해의 추호(酋豪) 최오사(崔烏斯) 등 33명이 와서 귀부하였다. 발해는 당(唐)나라, 후량(後梁), 후당(後唐) 때부터 중국에 조공을 끊이지 않고 바쳤다. 후당 천성 초에 계단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부여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야율아보기가 죽자, 발해왕이 다시 부여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장흥(長興 ; 후당 명종의 연호)과 청태(淸泰 ; 후당 폐제(廢帝)의 연호) 연간에도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쳤다. 그러다가 주(周)나라 현덕 연간 이후로는 길이 끊어져서 중국과 통하지 못하였다. 981년 송(宋)나라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6년)에, 태종이 요(遼)나라를 크게 정벌하고자 하였다. 이에 같은 해 7월 병오에, 발해의 오사성 부유부 발해 염부왕(烏舍城浮渝府渤海琰府王)에게 조서를 내렸는데, 그 조서에 대략, 우매한 저 북쪽 종족이 대대로 주멸되지 않은 채, 도리에 어긋나는 일로 원한을 맺어 번번이 멋대로 잠식해 왔다. 이에 지난번에 군사를 출동시켜 종족의 군사를 많이 참획하였다. 이제 진군의 북을 울리면서 깊숙이 쳐들어가 자리를 말듯이 휩쓸면서 말을 몰아 그 종족의 궁궐을 불사르고, 그 무리를 섬멸하려고 한다. 내가 평소에 들으니, 그대 나라는 원수의 나라와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 그들에게 병탄당하면서도 무력으로 그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탓에 꼼짝없이 복종하면서 땅을 떼어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모든 부족을 다 출동시켜 우리의 군사를 돕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다 섬멸한 다음에 크게 상을 내려 북쪽 사막 바깥의 지역은 모두 다 그대 나라에 떼어 줄 것이니, 협력하기 바란다. 짐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991년 송(宋)나라 순화(淳化) 2년 겨울에, 발해가 조공을 보내지 않았다. 이에 여진(女眞)에 조서를 내려치게 하였다. (송사) 1018년 요(遼)나라 성종(遼聖宗) 개태(開泰) 7년에, 발해를 친히 정벌하였다.

 

1029년 요(遼)나라 태평(太平) 9년 8월에, 동경사리군(東京舍利軍)의 상온(詳穩) 대연림(大延琳)이, <살펴보건대, 대연림은 발해 고왕(高王)의 7세손이다> 유수(留守)와 부마도위(駙馬都尉) 소효선(蕭孝先)을 수금하였다. 그러고는 드디어 임금을 참칭하면서 국호(國號)를 흥료국(興遼國)이라 하고, 연호를 천경(天慶)이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고려사(高麗史)에는 천흥(天興)으로 되어 있다. 이때에 남북의 여진이 모두 대연림을 따랐으며, 고려에서도 역시 조공을 늦추었다. 같은 해 10월에 소효목(蕭孝穆)을 도통(都統)으로 삼아 토벌하였다.

 

▲  (좌로부터) 경주에서 출토된 철제 십자문장식 2점(좌: 5.8×5.6cm, 우: 2.4×3.2cm, 7∼8세기, 통일신라시대, 숭실대학교 부설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발해의 솔빈부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출토된 십자가.   © TIN 뉴스

 

1030년 요(遼)나라 태평 10년 8월에, 대연림을 사로잡고 발해를 평정하였다.

 

1115년 요(遼)나라 천조제(天祚帝) 천경(天慶) 5년 2월에, 요주(饒州)의 발해인(渤海人) 고욕(古欲)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는 자칭 대왕(大王)이라 칭하였다.  1116년 요(遼)나라 천경 6년 정월 초하루 병인에, 동경(東京)에서 한밤 중에 악동(惡童) 10여명이 술에 취해 칼을 들고는 유수부(留守府)의 담을 뛰어넘어 들어와서 유수 소보선(蕭保先)을 찔러 죽였다. 이에 유수의 비장(裨將)으로 있던 발해 사람 고영창(高永昌)이 왕호를 참칭하고는 융기(隆基) 원년이라고 칭하였다. 같은 해 윤월에 소한가노(蕭韓家奴)와 장림(張琳)을 보내어 고영창을 토벌하였다. 같은 해 4월에 소한가노 등이 다시 고영창에게 패하였다. 같은 해 5월에 황제가 산목원(散木原)에서 피서하였다. 여진의 군사가 심주(瀋州)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다시 동경을 함락시키고 고영창을 포로로 잡으니, 동경의 주현(州縣)에 있던 족인(族人)들이 모두 여진에게 항복하였다.

 

다음호에 ‘발해의 의복… ⑤’가 이어집니다.

 

 

▲ ©TIN 뉴스

 

 

 

박원호TINNEWS

영남지사장(논설위원 겸직)

前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본부장

whpark@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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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8 [11:08]  최종편집: ⓒ 코리아패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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