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의복 및 섬유생활문화 ②

박원호의 섬유역사산책-8
KoreaFashionNews | 입력 : 2016/11/28 [10:58]
▲ 발해 구름모양 자배기 © TIN 뉴스     © KoreaFashionNews

 

 

◈ 삼국사기에 수록된 발해의 역사와 그 풍속

 

◎ 동사강목에 수록된 발해의 역사와 그 풍속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의하면, 699년 신라 효소왕(孝昭王) 8년, 대조영(大祚榮)이 처음으로 신라에 귀부하였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보이지 않는데, 최치원(崔致遠)의 문집(文集) 중에, “897년 당(唐)나라 건녕(乾寧) 4년에 올린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에, 발해(渤海)가 처음 읍거(邑居)를 세우고, 이웃의 도움에 의지하고자 오므로 그 추장(酋長) 대조영에게 비로소 신번(臣藩)의 예로 제5품 대아찬(大阿飡)의 관질(官秩)을 주었다”라고 한 것을 보아, 사책(史冊)의 궐문이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700년 당(唐)나라 중종 17년 무후(武后) 구시(九視) 원년에, 이해고(李楷固)를 보내 계단(契丹 ; 거란)의 잔당을 쳐 평정하였다고 하였는데, 문헌통고 발해전(渤海傳)에는, “이때 대조영이 잔병을 이끌고 도망가는 것을 이해고가 끝까지 추격하다가 패전해 돌아오니, 조영이 드디어 국호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최치원의 문집을 따르고, 사성(嗣聖) 경자년에 붙여 그 사실을 밝힌다.

 

713년 신라 성덕왕, 당(唐)나라가 말갈의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삼았다. 이때에 조영이 점점 강성하여져서 사자를 보내어 돌궐(突厥)과 통교하였고, 땅의 경계는 2천리요 호구는 10여만호었다. 자못 글을 알았고, 부여(扶餘)와 옥저(沃沮), 조선(朝鮮), 해북제국(海北諸國)의 땅을 모두 차지하였는데, 영주(營州)에서 동북으로 천리되는 곳이다. 남쪽으로 신라와 이하(泥河와 접하였다.

 

신라 자비왕(慈悲王) 11년에 아슬라(河瑟羅 ; 강릉) 사람을 징집하여 이하에 성을 쌓았으며, 신라 소지왕(炤知王) 3년에는, 고구려가 미질(彌秩 ; 경북 흥해)에 진군(進軍)하여 싸우다가 적이 패해 달아나매 쫓아가 이하의 서쪽에서 파(破)하였다.

 

또 신라 소지왕 18년에, 고구려가 신라의 우산성(牛山城 ; 춘천)을 공격할 적에 장군 실죽(實竹)이 나가 쳐서 이하에서 파(破)하였다. 이처럼 신라의 북쪽 경계는 정천군(井泉郡 ; 덕원)을 경계로 하였으며, 동쪽은 바다에 닿았고 서쪽은 계란이다.

 

성곽(城郭)을 쌓고 거처하니, 고구려의 달아난 남은 무리들이 점차로 그에게 귀의하였다. 당(唐)나라 중종(中宗) 때에 아들을 보내어 입시(入侍)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좌요위대장군 발해군왕(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으로 제수하여, 통괄하는 곳을 홀한주(忽汗州)라 하고 홀한주 도독(忽汗州都督)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비로소 말갈의 칭호를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 일컬었다. 이해에 발해왕 인수가 졸하였다. 시호를 선왕(宣王)이라 하였다. 아들 신덕(新德)이 일찍 죽었으므로 손자 이진(彛震)이 임금자리에 오르고, 연호를 함화(咸和)로 고쳤다. 그 이듬해에 당(唐)나라의 조명으로 작위를 습봉하였다.

 

인수는 바다 북쪽의 여러 부족을 토벌하여 크게 강토를 확장하였다. 대조영 이래로 자주 여러 학생을 당(唐)나라에 보내어 제도를 배웠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드디어 해동의 강성한 나라가 되어, 숙신(肅愼)과 예맥(濊貊), 옥저(沃沮), 고구려, 부여, 읍루(挹婁), 솔빈(率賓), 철리(鐵利), 월희(越喜) 등의 옛날 땅을 차지하고, 5경 15부 62주를 두었으며, 예악과 제도는 대개 중국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신당서(新唐書) 발해전(渤海傳)을 살펴보면, 발해에는 5경 15부 62주가 있으니, 숙신의 옛날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아 용천부(龍泉府)라 하고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주를 관할하였고, 그 남쪽에 중경(中京)이 있는데 현덕부(顯德府)라 하고 노주(盧州)와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의 6주를 관할하였고, 예맥의 옛날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아 용원부(龍原府), 또는 책성부(柵城府)라 하고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의 4주를 관할하였고, 옥저의 옛날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아 남해부(南海府)라 하고 옥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의 3주를 관할하였고, 고구려의 옛날 땅에 서경(西京)을 두어 압록부(鴨淥府)라 하고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豊州), 정주(正州)의 4주를 관할하였으며, 장령부(長領府)는 하주(瑕州), 하주(河州)의 2주를 관할하였고, 부여의 옛날 땅에는 부여부(扶餘府)를 두어 항상 굳센 군사를 주둔시켜 계단(契丹 ; 거란)을 방비하였는데 부주(扶州), 선주(仙州)의 2주를 관할하였으며, 막힐부(鄚頡府)는 막주(鄚州), 고주(高州)의 2주를 관할하였고, 읍루의 옛날 땅에는 정리부(定理府)를 두어 정주(定州)ㆍ심주(瀋州)의 2주를 관할하였으며, 안변부(安邊府)는 안주(安州), 경주(瓊州)의 2주를 관할하였고, 솔빈의 옛날 땅에는 솔빈부(率賓府)를 두어 화주(華州), 익주(益州), 건주(建州)의 3주를 관할하였고, 불녈(拂涅)의 옛날 땅에는 동평부(東平府)를 두어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沱州), 흑주(黑州), 비주(比州)의 5주를 관할하였고, 철리의 옛날 땅에는 철리부(鐵利府)를 두어 광주(廣州), 분주(汾州), 포주(蒲州), 해주(海州), 의주(義州), 귀주(歸州)의 6주를 관할하였고, 월희의 옛날 땅에는 회원부(懷遠府)를 두어 달주(達州), 월주(越州), 회주(懷州), 기주(紀州), 부주(富州), 미주(美州), 복주(福州), 야주(邪州), 지주(芝州)의 9주를 관할하였으며, 안원부(安遠府)는 영주(寧州), 미주(郿州), 모주(慕州), 상주(常州)의 4주를 관찰하였다.

 

그리고 영주(郢州), 동주(銅州), 속주(涑州)의 3주는 독주주(獨奏州)로 삼았는데, 속주가 속말강(涑沫江)에 가깝기 때문이다. 용원(龍原) 동남쪽은 바다에 연해 있어서 일본과 교통하는 길이요, 남해는 신라와 교통하는 길이고, 압록은 조공하는 길이며, 장령(長嶺)은 영주(營州)와 교통하는 길이고, 부여는 계단(契丹 ; 거란)과 교통하는 길이다.

 

▲  발해의 지방 제도    © TIN 뉴스

 

 

그 나라(발해)의 풍속은 임금을 가독부(可毒夫), 또는 성주(聖主), 기하(基下)라 하고, 임금의 명을 교(敎)라 하며, 임금의 부친을 노왕(老王)이라 하고, 모친을 태비(太妃)라 하며, 처를 귀비(貴妃)라 하고, 맏아들을 부왕(副王)이라 하고, 지차 아들을 왕자라 하였다.

 

관제는 선조성(宣詔省)에 좌상(左相)과 좌평장사(左平章事), 시중(侍中), 좌상시(左常侍), 간의(諫議)가 있고, 중대성(中臺省)에 우상(右相), 우평장사(右平章事), 내사(內史), 조고사인(詔誥舍人)이 있고, 정당성(政堂省)에는 대내상(大內相) 1명이 있는데 좌우상(左右相)의 위쪽이다.

 

좌우사정(左右司政) 각 1명은 좌우평장사(左右平章事)의 아래로 복야(僕射)에 해당하고, 좌우윤(左右允)은 이승(二丞)에 해당하는 것이다. 좌육사(左六司)의 충부(忠部), 인부(仁部), 의부(義部)에는 각기 경(卿) 1명이 있는데 사정(司政)의 아래로서 작부(爵部), 창부(倉部), 선부(膳部)를 맡아 보며, 부에는 낭중(郞中), 원외(員外)가 있다.

 

우육사(右六司)는 지부(智部), 예부(禮部), 신부(信部)가 있는데 융부(戎部), 계부(計部), 수부(水部)를 맡아 보며, 경과 낭중은 좌육사와 같은데 중국의 육관(六官)에 해당하는 것이다. 중정대(中正臺)에는 대중정(大中正) 1명이 있는데 어사대부(御史大夫)에 해당하며 사정의 아래에 위치하고, 소정(少正) 1명이 있다.

 

또 전중시(殿中寺), 종속시(宗屬寺)에는 대령(大令)이 있고, 문적원(文籍院)에는 감(監)과 영(令)이 있는데 감에는 다 소감(少監)이 있으며, 태상시(太常寺), 사빈시(司賓寺), 대농시(大農寺)에는 경(卿)이 있고, 사장시(司藏寺), 사선시(司膳寺)에는 영과 승(丞)이 있고, 주자감(冑子監)에는 감장(監長)이 있고, 항백국(巷伯局)에는 상시(常侍) 등의 관직이 있다.

 

무관(武官)으로는 좌우 맹분(猛賁)과 웅위(熊衛), 비위(羆衛), 남좌우위(南左右衛), 북좌우위(北左右衛)가 있는데, 각기 대장군(大將軍) 1명, 장군(將軍) 1명 있다. 대개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였음이 이와 같다.

 

품(品)을 가지고 질(秩)을 정하였는데 3질 이상의 복색은 자색이고, 홀(笏)은 상아(象牙)이며, 어대(魚袋)는 금이고, 5질 이상의 복색은 비색(緋色)이고, 홀은 상아이며, 어대는 은이고, 6질과 7질의 복색은 엷은 비색이고, 8질의 복색은 녹색(綠色)이며 홀은 모두 나무이다.

 

그 나라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태백산(太白山)의 토끼와 남해의 곤포(昆布), 책성(柵城)의 콩자반, 부여의 사슴, 막힐(鄚頡)의 돼지, 솔빈의 말, 현주(顯州)의 포(布), 옥주(沃州)의 면(綿), 용주(龍州)의 견직물, 위성(位城)의 철(鐵), 노성(盧城)의 도(稻 ; 벼), 미타(湄沱)의 향(䱶 ; 도미) 등이다.

 

과일에는 구도(九都)의 오얏과 낙유(樂游)의 리(梨 ; 배[梨) 있다. 그 나머지의 풍속은 대략 고려(고구려), 계단(契丹 ; 거란)과 비슷하다.

 

▲ 발해 돌사자상    © TIN 뉴스

 

 

유주절도사부(幽州節度使府)와 서로 사신을 보내 교빙하였다. “영평(營平)으로부터 중국 서울까지는 8천리의 먼 거리이다”라고 하고 있다.

 

926년 신라 경애왕 3년 가을 7월, 계단(契丹 ; 거란)이 발해를 멸하였다. 발해와 계단은 대대로 원수를 지어 해마다 침벌(侵伐)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계단주(契丹主)가 당(唐)나라를 침구할 것을 도모하였는데, 발해가 그 뒤를 몰아칠까 두려워하여, 좌우에게 이르기를,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를 갚지 않고서 어찌 편안히 살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곧 그 나라 서쪽 변방 여러 부(部)를 대거(大擧) 공격하였으며, 드디어 부여성(扶餘城)에 나아가 포위하여 이를 함락하고, 군사를 전진시켜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하였다.

 

발해왕 대인찬(大諲譔)이 싸움에 패하여 항복할 것을 비니, 계단주가 군사로 인찬 및 그의 족속을 호위시켜서 출성하여 임황(臨潢) 서쪽에 유치(留置)하도록 명하고, ‘오로고(烏魯古)’라는 이름을 내렸다.

 

성경지(盛京志)에는, 요(遼)나라가 혼동강(混同江) 북쪽에 임황부(臨潢府)를 두었다고 하였다. 발해를 고쳐 동단국(東丹國)이라 하고, 홀한성을 천복성(天福城)이라 하니, 발해는 나라를 세운 지 무릇 214년만에 망하였다.

 

계단주(契丹主)는 장자 돌욕(突欲)에게 명하여, 동단국(東丹國)에 주둔시키고 인황왕(人皇王)이라 불렀다. 이에 발해의 장군 신덕(申德) 등 500명과,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 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경(工部卿) 대복모(大福謩),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檢校) 개국남(開國男) 박어(朴漁) 등, 무리를 거느리고 전후하여 고려에 귀순해 온 자가 수만호였다. 고려왕이 그들을 매우 후대하였다.

 

<동사강목 발해국 군현고(渤海國郡縣考)에 의하면>, 문헌통고에, “발해는 바로 고구려의 옛날 땅으로 곧, 영주(營州)의 2천리인데, 남쪽으로 신라에 접하여 이하(泥河)로 경계를 하였으며, 동쪽은 바다에 닿고 서쪽은 계단((契丹 ; 거란)이다”라고 하였다.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에는, 발해국의 남해(南海)와 부여(扶餘), 책성(柵城), 압록(鴨綠) 등 4부(府)는 모두 고구려의 옛날 땅이다.

 

“신라의 정천군(井泉郡)으로부터 책성부(柵城府)에 이르는데 거리는 대범 39역(驛)이다”라고 하였다. 살고하면, 당(唐)나라의 제도에서 30리에 역을 두었으니, 39역은 곧 1천1백70리가 된다.

 

지금 당서로 주본을 삼고, 성경지로 주를 달되, 당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성경지로 보충하고, 그 중에 미상한 것은 궐하였으니 그 대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당서 발해전에 의하면, 그 나라에는 5경(京), 15부(府), 62주(州)가 있었다. 상경(上京; 도읍)으로 용천부(龍泉府)를 삼고,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등 3주(州)를 거느렸다. 주((州) 안에는 또 무창(武昌), 정무(定武) 등 2현(縣)이 있는데 발해(渤海)가 설치한 것이다.

 

그 남쪽에는 중경(中京)으로 현덕부(顯德府)를 삼고, 노주(盧州), 산양(山陽), 한양(漢陽), 백암(白巖), 상암현(霜巖縣) 등을 거느렸다. 백암현(白巖縣)은 고구려의 백애성(白崖城)으로 당(唐)나라 태종이 암주(巖州)로 고쳤는데, 지금(조선시대) 요양주성(遼陽州城) 동쪽 57리에 있다. 석성산(石城山) 위에는 옛날 보루(堡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상암현(霜巖縣)은 한(漢)나라 때의 험독(險瀆)인데, 고구려(高句麗)가 상암(霜巖)으로 고치고, 발해(渤海)가 또 집주(集州)로 고쳐 봉집(奉集) 1현(縣)을 거느리게 하였다.

 

봉집현에는 혼하(渾河)가 있다.

 

상암현은 지금의 승덕현(承德縣)에 있다. 또 진주(辰州)는 고구려의 개갈모성(盖葛牟城)인데, 당(唐)나라 태종이 개주(蓋州)로 고치고, 발해도 그대로 따르다가 또 진주로 고쳤다.

 

장녕현(長寧縣)은 한(漢)나라의 평곽현(平郭縣)이다. 대인수(大仁秀)에 이르러 흥요현(興遼縣)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개평현(盖平縣) 지경에 있다.

 

따라서 진주를 비롯하여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 등 6주를 거느렸다.

 

예(濊)나라와 맥(貊)나라의 옛날 땅을 동경(東京)의 용원부(龍原府 ; 책성부)를 삼고, 경주(慶州 ; 고구려의 제도에 따라 발해도 그대로 따르고, 경(京)을 두었는데, 지금의 봉황성이다. 용원(龍原), 영안(永安), 오산(烏山), 벽곡(壁谷), 웅산(熊山), 백양(白楊) 등 6현을 거느렸다.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 등 4주를 거느렸다. 옥저(沃沮)의 옛땅으로, 남경(南京)으로 남해부(南海府)를 삼고, 옥주(沃州), 청주(晴州), 초주(椒州) 등 3주를 거느렸다. 또 발해 영풍현(永豐縣)은 한(漢)나라의 요수(遼隋) 땅인데 지금의 해성현 서쪽 60리에 있다.

 

▲  발해 삼채 향로    © TIN 뉴스

 

고구려의 옛날 땅으로, 서경(西京)으로 압록부(鴨綠府)를 삼고,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豊州), 정주(正州) 등 4주를 거느렸다. 장령부(長嶺府)는 하주(瑕州), 하주(河州) 등 2주를 거느렸다. 부여(扶餘)의 옛땅을, 부여부(扶餘府)를 삼아, 부주(扶州), 선주(僊州) 2주를 거느리고 항시 강한 군사를 주둔시켜 계단을 막게 하였다.

 

또 영평(永平), 장평(長平)은 요(遼)나라가 황룡현(黃龍縣)으로,, 영녕(永寧)은 천민현(遷民縣)으로, 현의(顯義)는 안원현(安遠縣)으로, 강수(强帥)는 귀인현(歸仁縣)으로 고쳤다. 5현은 다 지금의 개원 지경에 있었는데 지역 분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막힐부(鄚頡府)는 막주(鄚州), 고주(高州) 등 2주를 거느렸다. 고구려가 두었고, 발해도 그대로 따랐으며, 요(遼)나라도 한주(韓州)와 봉주(鳳州)를 두었는데, 이는 다 옛날의 고리국(藁蘺國)이다.

 

봉주는 곧 발해의 안녕군(安寧郡)인데 한주 북쪽 2백리인 지금 변외(邊外)의 땅에 있다. 읍루(挹婁)의 옛날 땅을 정리부(定理府)로 삼고, 정주(定州), 심주(瀋州) 등 2주를 거느렸다. 또 숭주(崇州)는 발해가 두었느데 숭산(崇山), 규수(潙水), 녹성(綠城) 등 3현을 두었다.

 

숭주는 지금(조선)의 요양(遼陽) 동북쪽 150리에 있다. 읍루의 옛날 땅에는 안정군(安定郡)을 두었다. 요(遼)나라에서는 이곳에 쌍주(雙州) 보안군(保安軍)을 두었는데, 지금의 철령현(鐵嶺縣)이고, 또 안이현(安彛縣)을 두었는데 지금의 철령현 서남쪽 60리에 있다.

 

안변부(安邊府)는 안주(安州), 경주(瓊州) 등 2주(州)를 거느렸다. 솔빈(率賓)의 옛날 땅을 솔빈부(率賓府)로 삼고, 화주(華州), 익주(益州), 건주(建州) 등 3주를 거느렸다.

 

불날(拂揑)의 옛날 땅을 동평부(東平府)로 삼고,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沱州), 흑주(黑州), 비주(比州) 등 5주를 거느렸다.  철리(鐵利)의 옛날 땅을 철리부(鐵利府)로 삼고, 광주(廣州), 분주(汾州), 포주(蒲州), 해주(海州) 의주(義州), 귀주(歸州) 등 6주를 거느렸다.

 

월희(越喜)의 옛날 땅을 회원부(懷遠府)로 삼고, 달주(達州), 월주(越州), 회주(懷州), 기주(紀州), 부주(富州), 미주(美州), 복주(福州), 사주(邪州), 지주(芝州) 등 9주를 거느렸다. 상고하면, 불날(拂揑), 철리(鐵利), 월희(越喜)는 모두 고구려제현고(高句麗諸縣考)와 말갈고(靺鞨考)에 보인다.

 

3나라는 다 여진(女眞)의 맨 동쪽 땅에 있었고, 또 발해가 국토를 5천리나 개척하였으니, 3나라는 마땅히 이곳에 내부(內附)하였을 것이며, 또 그곳에 군현(郡縣)을 설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성경지에는 모두 요동땅에 편록(編錄)해 놓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안원부(安遠府)는 영주(寧州), 미주(郿州), 모주(慕州), 상주(常州) 등 4주를 거느렸다. 또 영주(郢州), 동주(銅州), 속주(涑州) 등 3주를 독주주(獨奏州)로 삼았다.

 

용원부(龍原府)는 동남쪽이 바다에 닿았으니 일본(日本)으로 통하는 길이요, 남해부(南海府)는 신라(新羅)로 통하는 길이요, 압록부(鴨綠府)는 조공(朝貢)하는 길이요, 장령부(長嶺府)는 영주(營州)로 통하는 길이요, 부여부(扶餘府)는 계단(거란)으로 통하는 길이다. 경사(京師 ; 당나라 도읍인 장안)와의 상거는 8천리이다.

 

▲ 발해 이불병좌상    © TIN 뉴스

 

<동사강목 분야고(分野考)에 의하면>, 한서(漢書) 지리지에, “연지(燕地)는 미(尾 ; 별이름), 기(箕) 분야(分野)이다. 곧 석목(析木 ; 별이름)의 성좌(星座)이다. 낙랑과 현도도 마땅히 그에 속한다”라고 하고 있고, 진서(晋書) 천문지에, “발해는 기(箕)의 1도(度)에 해당하고, 낙랑은 기의 3도에 해당하고, 현도는 기의 6도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

 

이러므로 후인들이 우리나라를 이 기의 분야에 해당시킨다. 일찍이 내(안정복)가 스승(이익)에게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기자(箕子)의 봉지(封地)는 남기(南箕 성좌(星座) 이름. 남방 7수(宿)의 하나)의 땅에 있다. 홍범(洪範)에 설명한 것은 곧 낙서(洛書)를 펴서 만든 것이다.

 

낙서의 위치는 이(二)와 팔(八)이 그 위치가 바뀌었다. 상고하면, 음양(陰陽)의 숫자는 ‘자(子)’와 ‘오(午)’에서 시작한다.

 

양수(陽數)는 ‘자(子)’에서 시작하여 바로 세어가기 때문에, 1(一)이 감(坎)에, 2(二)가 간(艮)에, 3(三)이 진(震)에, 4(四)가 손(巽)에 위치하고, 음수(陰數)는 ‘오(午)’에서 시작하여 역으로 세어가기 때문에 9(九)가 이(離)에, 8(八)이 곤(坤)에, 7(七)이 태(兌)에, 6(六)이 건(乾)에 위치한다.

 

지금 낙서의 수는 2가 곤에, 8이 간에 위치했기 때문에 위치가 바뀌었다 한 것이다. 2와 8이 위치가 바뀌었다 한 것은 25사(二五事)의 숙(肅), 예(乂), 철(哲), 모(謀), 성(聖)이 8서징(八庶徵)의 우(雨), 양(暘), 욱(燠), 한(寒), 풍(風)과 서로 대응하니, 이것은 하늘과 사람이 감응하는 이치이다.

 

곤(坤)과 간(艮)이 마주 대하여, 위로는 은하(銀河)에 응한다. 은하는 본래 도는 것인데, 지금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간(艮)에서부터 곤(坤)에 이르기까지일 뿐이다. 간(艮)은 기(箕)와 미(尾)의 성좌에 해당한다.

 

지금 압록강 이동의 물은 모두 간방(艮方)에서 곤방(坤方)으로 흘러 홍범의 글과 꼭 맞으니, 그 일은 마치 귀신이 도운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기(箕)의 분야에 해당하니 천문과 지리가 이처럼 꼭 맞다.

 

한서 지리지에 또, “조선은 바다 가운데 있으니 월(越)나라의 상(象)이요, 북방(北方)에 있으니 호(胡)나라의 상이다”라고 하였으니, 월나라의 상이 있기 때문에 또한 두(斗)의 분야로 해당시킨다.

 

당(唐)나라의 일행(一行)은, 기(箕)와 남두(南斗)가 서로 가까우니 요수(遼水)의 양지쪽이 된다. “조선 삼한의 땅은 모두 오월(吳越)나라 동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상고하건대, 지금의 삼남(三南)이 곧 옛날 삼한의 땅이니, 오월(吳越)나라와 마주 대하였다. 그렇다면 한수(漢水) 남쪽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마땅히 두(斗)의 분야로 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만국전도경위선(萬國全圖經緯線)으로 우리나라 전도(全圖)를 그리면, 이적도이북(離赤道以北) 37도(度)의 기처(起處), 이복도이동(離福島以東) 163도 150리(里)가 바로 경도(京都) 한성부(漢城府) 본 위치이다.

 

경도의 서단(西端)인 황해도 풍천부(豐川府)의 이복도 161도 89리는 북으로 여진(女眞)의 백도눌(白都訥) 동쪽 지경에 닿고, 동단(東端)인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이복도〉 165도 190리는 북으로 여진의 흑룡강(黑龍江) 동쪽 지경에 닿는데, 〈서단에서 동단까지가〉 4도 1도는 250리이다. 즉 102리가 된다.

 

남단(南端)인 전라도 해남현(海南縣) 북신출지(北辰出地) 31도 244리는 서쪽으로 중국 절강성 북쪽 지경에 닿고, 또 해남현에서 바다를 건너면 제주도 남쪽 지경에 닿는데, 바로 그곳의 북신출지 27도 197리는 서쪽으로 중국 복건성(福建省) 남쪽 지경에 닿고, 북단(北端)인 함경도 온성부(穩城府) 북신출지 44도 91리는 서쪽으로 여진의 길림(吉林) 북쪽 지경에 닿는데, (남단에서 북단까지가) 16도 158리가 된다.

 

경도(京都)는 산동성(山東省)과 위(緯)가 같으면서 조금 북쪽으로 치우치고 길림 땅과 경(經)이 같다.

 

대저 위광(緯廣)은 여진과 대략 같으나 좁고, 경장(經長)은 중국과 대략 같으나 짧다. 천관서(天官書)로 상고하면, 함경, 평안 2도 및 황해, 강원 2도의 북쪽 지경은 중국 순천부(順天府)와 위가 같으니, 마땅히 기(箕)와 미(尾)의 분야에 속해야 하고, 경기도 및 황해, 강원 2도의 남쪽, 충청, 경상 2도의 북쪽 지경은 중국 산동성(山東省)과 위가 같으니 마땅히 허(虛)와 위(危)의 분야에 속해야 하고, 전라도 및 경상, 충청 2도의 남쪽 지경은 중국 강남성(江南省)과 위가 같으니 마땅히 두(斗)의 분야에 속해야 하고, 제주는 중국 복건성(福建省)과 위가 같으니 마땅히 우(牛)와 여(女)의 분야에 속해야 한다. 이는 그림을 상고하여서도 볼 수가 있다.

 

다음호에 ‘발해의 의복… ③’가 이어집니다.

 

 

 

▲ ©TIN 뉴스

 

 

 

박원호TINNEWS

영남지사장(논설위원 겸직)

前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본부장

whpark@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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