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학림의 칼럼 14th. 逐鷄望籬(축계망리)

KoreaFashionNews | 입력 : 2015/01/16 [14:52]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한 해 먼저 필자보다 졸업한 한 친구는, 뉴욕의 한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을 하다가, 좋은 조건으로 다른 곳으로 옮길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고민하던 것은 하이엔드 브랜드였던 전 직장에 비해 연봉은 높지만 로우엔드 브랜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로우엔드 브랜드임에도, 거대 기업 소속이었고, 단순히 10달러짜리 옷을 디자인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10년 후를 내다 보는 이른바 “컨셉팀”이었고, 새로 만들어지는 이 팀을 위해 기업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직장을 옮겼고 의욕적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 달 후, 그와의 전화 통화 내용에서 그는, 그 투자가 수개월간의 실험 끝에 비젼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조직이 완전히 개편되었고, 아마도 조만간 다시 직장을 옮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수천억원에서 수조에 이르는 거대한 자본을 투자한 기업이 불과 몇 달 만에 그 계획을 완전히 바꾼 가장 큰 원인은 다름아닌 “유니클로”라는 일본 브랜드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유니클로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는 결론때문이었는데, 그와 함께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꽤 신선하면서 충격적이었다.


유니클로 내에는 한 팀이 있으며, 이 팀의 업무는, 간단히 말해서 앞으로 10년 후를 예측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이비리그 등의 수학이나 통계등을 전공한 -한마디로 패션과는 아무 연관성 없어보이는- 세계적인 천재들을 고용해서 SNS를 비롯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관심사와 취향의 변화등을 고려해서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세상이 되어있고, 어떤 것들을 좋아하며 그래서 어떤 것들을 원할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이 그 팀의 주된 업무이며, 이런 데이터의 결과물로 등장한 것이 히트텍 및 아웃도어 스타일의 초경량 덕다운 패팅점퍼 등이라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우습게 보이는 이 일본 기업은 지금 이시간에도 앞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연구하고 있으며, 그 예측은 거의 빗나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더 범위를 좁혀 패션 분야에서 여전히 가장 큰 화두는 “S.P.A”일 것이다.


생산에서 판매까지 중간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제작자가 판매까지 맡아서 한다는 시스템인 이 S.P.A라는 표현은 사실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세계의 시장을 잠식해 나갔고, 지금은 패션 산업의 정중앙에 우뚝 선 채 패션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미 수발자국 늦게 현실을 인식한 한국의 대기업들과 중소 패션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년 전부터 “한국형 S.P.A”를 외치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 많은 “한국형 S.P.A 브랜드”들은 거의 대부분 매달 어마어마한 적자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수년 후를, 10년 후를 내다보며 디자인을 전개하는 브랜드와, 아무 아이덴티티도 컨셉도 없이 그저 싸고 입기 편한 옷을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브랜드가 어떻게 싸움이 될수 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는 비단 S.P.A 브랜드에 국한 된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수많은 디자이너 브랜드들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하다고 인정받은- 조차도 최근의 경향을 보자면, 브랜드만의 고유한 컨셉을 전개하기 보다는 빈약한 내용을 채우기 위한 이런저런 퍼포먼스로 눈요기를 제공할 뿐, 어떤 브랜드를 떠올릴 때 단번에 떠오르는 그런 “브랜드 철학”을 확고히 가진 브랜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말로만 세계 5대 패션위크로의 도약이니 새로운 한류시장의 개척이니 할 것이 아니고, 조금 더 늦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브랜드로서, 한 디자이너로서 자기 길을 꾸준히 갈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유니클로의 대성공을 보면서 제2의 유니클로를 꿈꾸며 비슷하게 모방해오던 그 “한국형 S.P.A브랜드”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얼마 전에 전해졌다.

이미 품질에 비해 월등히 경제적인 가격대를 설정해 놓은 유니클로에서, 그 유니클로보다더 더 합리적인 가격대를 가진(이쯤 되면 이건 “합리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유니클로의 서브브랜드인 “GU”를 한국에 론칭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또다른 S.P.A브랜드인 H&M은, 유니클로와는 반대로 현 H&M보다 한단계 위의 프리미엄 레이블인 “COS by H&M”을 2007년 론칭하였으며, COS는 유럽 내에서 짧은 시간 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매출을 올리고 있고, 국내에도 올해 봄 1호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이런 새 브랜드 론칭 뒤에는 앞서 말한대로 철저한 마켓 리서치와 디자인 철학(아무리 저가브랜드여도 GAP과 Uniqlo, H&M의 디자인에는 각 브랜드의 확고한 디자인 차이가 존재한다.)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逐鷄望籬(축계망리).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라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이제껏 유니클로와 자라, H&M을 그대로 흉내내고 모방해서 뭐라도 해볼까 했더니 이미 그네들은 비웃으며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다.


어쩌면 필자의 지인이 몸담았던 그 기업이 그랬듯이, 이미 따라잡기엔 너무 늦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까지 남 꽁무니만 보고 달려가려는 것인지.

 

▲ 20CFBB CHIEF DESIGNER 이학림 © KoreaFashio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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